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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가 리호 암살하려고 했으면 좋겠다. 야차는 남자, 5의 번호와 염안불의 칭호를 부여받은 실력자. 본인이 거느리는 소부대 10명을 이끌고 단 11명만으로 리호를 암살하러 나서는. 어차피 10 이하의 번호를 가진 야차는 리호에게는 식은죽먹기니까. 리호 옆에는 항상 야차 1, 비사문이 있긴 하지만 그 직속부하 10명이 비사문의 눈길을 끌어 발을 묶어놓은 사이, 염안불이 리호를 암살하러 가는 식.


리호는 물론 비사문이 급하게 나갔으니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 잠옷으로 입는 청자색 비단 한 장 걸치고 있다가 대충 침대 옆에 있던 검은 하오리 걸쳐서 허리띠 꽉 졸라매고 침실에서 주동자인 염안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염안불이 오기 전부터 이미 만해한 참백도를 들고 있고. 비단 침의는 가슴골도 드러나고, 맨다리도 드러나고. 그 겉에 걸친 검정의 하오리는 허리 길이까지 오고, 아무거나 들어 묶은 허리띠는 제법 얇을 것 같다. 만해 상태라서 선녀 날개처럼 흑색의 비단이 팔에 걸쳐져 있고. 머리는 싸울 때 불편하지 않게 대충 올려 비녀를 하나 꽂은 상태.


염안불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범옥아귀 열해사 들고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오래 기다렸습니다, 염안불. 일단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암살을 하러 오셨으니 그럴 생각이 없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이야기하겠지. 이 염안불이 초대 염안불인데, 리호보다 나이가 많아서 리호가 경어를 썼으면 좋겠다. 리호의 말을 듣고도 염안불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리호를 죽이려던 이유를 설명하겠지. 당신의 가치관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초대 염안불은 리호가 그 강함이 마음에 들어서 내키지 않아 하는 그를 설득해서 야차군에 넣었을 것 같다.


"그럼 직접 서신을 적지 그러셨습니까."

"내가 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을 섬기고 싶지 않아서, 그 김에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네년에게 복종하고 있다고 착각이라도 했나?"

"그리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조금 서운하군요."

"난 히죽대면서 아랫것 깔보듯 하는 네년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염안불처럼 느끼는 자는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널 죽이기로 했지."

"마음먹으신 것이로군요."

"그래. 어차피 네년은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 없잖아?"

"후후, 그렇긴 하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관은 죽인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그게 네년 차례가 되었을 뿐이야."

"음, 예. 알겠습니다."

"쓸데 없이 침착하게 굴지 마라. 역겹군."

"침착해보이나요? 저는 꽤 근심중인데요."

"유산 상속 문제라도 마음에 걸리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왜 침실을 전투의 장소로 골랐는지 의문이 들어 그래요. 참백도 뿐 아니라 제 뒤에는 대검 두 자루와 언월도, 창, 도끼 세 자루가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제가 유리하지 않아요?"

"무기가 많다고 유리하다고 하지는 않지. 네년 아래에서 난 더 강해졌다. 강해졌으니 증명을 해야지.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죽임으로서 말이야."

"예, 당신답습니다, 염안불."


이런 대화 끝에 서로 동시에 달려들겠지. 맨발에 침의, 하오리 한 장 두른 리호와 갑옷으로 무장한 염안불. 처음엔 리호는 별로 죽일 생각은 없을 것 같다. 다시 포박해서 교육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일반 검이나 단도로 싸우다가, 염안불이 대놓고 살의만 드러내면서 공격해오니까 회유도 굴복도 불가능하겠구나 싶어서 마음먹고 싸우기 시작하겠다. 그전까지는 하도 뛰어다녀서 침대며 거울이며 탁자, 바닥, 벽 할 것 없이 잔뜩 피가 튀어버리고. 만해 써서 에 갇힌 찰나에 뒤에 진열되어있던 도끼며 창이며 언월도 다 들어서 범옥에 꽂아넣는. 옥이 사라지면 시뻘겋게 타올라 온갖 색깔의 물이 줄줄 흐르기도 하고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는 염안불의 어깨나 허리, 다리 등에 도끼랑 창 박힌 모습이 드러나겠지. 그래도 죽기 직전에 회심의 일격으로 들고 있던 검을 창 던지듯이 리호에게 던져서, 리호가 고개 까딱 해서 피하려다 머리카락 잘릴까봐 그냥 손으로 칼날 낚아챘을 것 같다.


마지막에 날아온 칼날을 맨손으로 잡아서 오른손에 난 상처에서 피가 떨어지는 리호는 둘째치고 시뻘겋게 타오른 몸에 도끼며 창이 꽂혀있는 염안불은 못 볼 꼴이겠다. 리호가 다가가서 어깨에 꽂혀 있던 도끼 뽑아들면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올라서 리호의 앞가슴에도 묻고. 지금까지 발목 잡혀 있던 비사문이 늦게나마 뛰어오면 시종인 키리 불러서 "목욕을 해야겠구나. 그리고 객실을 쉴 수 있게 손보아놓거라." 하고는 피곤하다고 침대로 걸어가 걸터앉는 리호.


침대의 이불 위에도 피가 잔뜩 튀어 있지만 어차피 침실의 가구 전체를 버리고 새로 꾸며야 할 거라며 신경 안쓰고 핏자국 위에 걸터앉겠다. 쥰지 위패를 놓았던 불단을 보다가 비사문에게 "그가 오기 전에 불단을 닫아 놓기를 잘 했군요. 그래, 싸움은 어땠나요, 비사문?" 하고 물으면 "잔챙이들 뿐이었습니다만, 본 적 없는 주박술에 묶여 늦었습니다." 하고 비사문이 고개 숙여 사죄하겠지.


다음날 레츠가 살짝 와서 리호에게 "간밤에 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감리관?" 하고 다정하게 물어오면 "조금 다쳤지만, 내가 내 부하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레츠?" 하고 나직이 웃으면서 대답하겠지. 며칠동안 객실에서 지내다가 침실 정리가 끝나서 돌아오면 "간만에 침실 분위기를 바꾸어보니 이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키리, 오늘은 함초주를 내오거라." 하고 술 마실 생각 하는 리호. 그리고 함초주 들고 새벽에 4번대 대사로 찾아갔으면 좋겠다.


"술이나 한 잔 할까, 레츠?"

"내일을 생각해야지요. 저는 대장이니까요."

"어머, 무슨 소리야. 댓 병을 비워도 취하질 않는 분이 그래?"


환하게 밤하늘 비추는 달 올려다보면서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는 리호와 레츠 보고싶다. 밖에서 들리는 대화소리에 4번대 부대장이 슬쩍 문 열었다가, 리호랑 레츠 보고 꾸벅 고개 숙이고 도로 들어가고. 이렇게 별 일 아니었다는 듯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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