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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이시 뮤지] 달이 아름답네요

 

w. 리네 

 

1.

 

자살을 준비 중이다. 곧 새벽 동이 틀 시간, 후끈하게 열이 오른 이 넓은 방 안에서, 랜턴을 하나 켜 놓고. 이곳에는 나밖에 없다.

 

어젯밤엔 보름달이 떴다. 아름다운 만월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래서 문득 이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손가락을 서랍 고리에 걸어, 끌어당긴다. 각종 아이섀도가 브랜드별로 나를 반겼다. 가장 비싸고 예뻐 한 번 밖에 쓰지 않은 섀도를 꺼내 뚜껑을 연다. 영롱한 붉은 색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우선 몸을 일으켜, 사패장을 입기로 했다.

 

그러니까…… 대충 반백년은 지난 것 같다. 사신이 된 것도. 하여간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고, 나는 곧 골분 하나 없이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자살을 할 생각이니까.

 

사패장은 늘 흑색이었다. 사패장을 만들었다던 0번대의 여인은 어지간히도 검정을 좋아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빛을 받아도 반짝이는 법이 없는, 거칠어 보이는 흑색 천을 몸에 걸친다. 따뜻한 분홍빛 허리띠를 매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우선 머리카락을 모두 들어올린다.

 

숱이 많은 편인 나는 늘 머리를 땋고 살았다. 펌이나 염색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밤이 되어 씻을 준비를 할 때에는 늘 머리에 웨이브가 졌다. 남편은 그 때의 모습을 꽤나 좋아했고, 그가 좋아한다기에 나도 싫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모양의 머리를 보여주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 점이 가끔 아쉬웠다.

 

우선 높이 올려 고무줄로 머리를 꽉 묶고, 두 손을 이용해 익숙한 손짓으로 머리를 땋아 내린다. 머리를 스스로 땋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언제나 직접 머리를 땋고 다녔다. 죽은 후에도, 그랬다. 이 머리는 꽤나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이, 몇 십 년 전의 어린 나와 닮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아주 천천히. 나는 80세가 다 되었지만, 여전히 십대 때의 외형이 남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땋은 후에는 마찬가지로 빛 같은 것에 반짝이지 않는 검은 리본을 들어올렸다. 머리의 꼭대기에 각 잡아 리본을 묶으면, 완성이었다. 나는 옛날과 꽤 다를 것이 없었다. 영술원에서 나름 운명이라 믿었던 첫 만남이 있던 날에도,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들지 않았던 어젯밤에는 만월을 보며 유서를 새로 쓸까 고민했다. 연초마다 수정해 고이 보관해 두는 유서에는 내 재산의 상속 문제와 차기 대장에 미사키 하쿠를, 장기 호로토벌 제1소대 소대장에 마타 아시타를 추천한다 하는 것들밖엔 적혀 있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사신으로서 지극히 필요한 단계 중 하나일 뿐인 종이 쪼가리. 다음 연초에도 살아있을 때면 나는 그 유서를 꺼내 파기하고 새로운 유서를 적어 내려갔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다. 수정되는 것은 상속할 재산의 양을 나타내는 숫자뿐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그런 것을 적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도. 새로운 유언이 적힌 종이는 차곡차곡 개어져 전과 같은 서류봉투에 들어갔고, 그 후에는 서랍에 1년 동안이나 방치되곤 했다. 한 달만 지나면 새로운 연초가 찾아온다.

 

아직은 밖이 환하지 않다. 환한 것은 화장대 앞뿐이었다. 물끄러미 침대 쪽에 시선을 두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거울을 주시한다. 뚜껑을 열어놓은 섀도를 들고, 붓을 하나 꺼내 문질렀다. 섬세한 검정 모에 핏빛 가루가 가득 묻어 나온다. 나는 거울 앞으로 조금 허리를 숙였고, 눈두덩에 핏방울을 올렸다. 새빨간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 꽤 괜찮아졌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던 그 날과. 입지 않은 대장 조끼는 바라도 보지 않는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침대를 향해 걸어가려다 맨발인 것을 깨닫는다. 바보 같기는. 버선을 꺼내어 신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푹신하고, 향이 좋다. 침대 옆에 오렌지 향 디퓨저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렌지 향을 좋아했고, 내가 좋아한다고 하자 남편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정말 오렌지 향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생에도 그가 내게 오렌지 향의 향수를 사다 준 적이 있다고 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다소곳이 무릎을 꿇어앉는다. 사패장을 입을 때 허리춤에 꽂아 놓았던 화야를 꺼내 손에 올렸다. 작디작은 단도. 내 참백도는 동경하던 자의 것보다도 짧고 작았다. 천타의 혼이 다른 칼에 스며들어가는 일은 전에 없던 이례적인 일이라, 처음 참백도를 해방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다 화야를 섬세하게 살폈던 일이 기억났다. 그 때 나는 혹시 참백도를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도 되지 않는 상상을 했고, 또 빨리 졸업해 밤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영술원에 들어간 지 4년 째 되는 해의 가을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칼집에서 화야를 뽑아들었다. 아름다운 칼이다. 늘 녹슬지 않게 관리하는 탓도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화야에 자부심을 가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인사하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지. 화야를 무릎 위에 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2.

 

언제나, 따뜻한 곳이다. 이곳은. 네가 오면 더욱 그렇다. 몸을 일으켰고, 내게 찾아온 너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어째 수상해보였다.

 

아가씨, 꽤 이상한 표정인데.”

그래요?”

 

활짝 웃어 보이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참 잘생겼다고 칭찬을 하는 꼴이 영락없이 수상하다.

 

무슨 영영 작별인사를 하려는 사람처럼 그래, 작은 아가씨.”

아저씨. 우리 이야기할까요? 저기에서.”

 

네가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핏물 위에 금빛 꽃이 만개한, 나의 집, 나의 호수를. 너는 저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 보다는,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끌려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한 아가씨이다.

 

원한다면, 기꺼이.”

 

너를 호수로 데려가야지. 저 피비린내 가득하고 움직이는 것 따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아름다운 낙원으로. 나는 너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작고 하얀 그 손에 너는 나를 들고 있었다. 칼집 없이 빛나는 나를. 네가 무슨 말을 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핏물 속으로, 너와 함께, 함께.

 

3.

 

밖에 동이 터 왔고, 소녀는 일어나 화장대 앞에 켜 놓았던 랜턴 불을 껐다. 이제는 방 밖이 밝고, 방의 안쪽, 특히 침대 위는 제법 어두웠다. 소녀가 고개를 숙여 화야의 성난 칼날을 주시한다.

 

아름다운 새벽이다. 동이 트고, 오늘 밤에도 또 만월이 뜨리라. 고요한 적막이 소녀를 둘러싸 다독인다. 소녀는 참백도에게서 처음으로 화내는 모습을 보았고,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새삼 간지럽게 느껴졌다.

 

이제 더는 고민할 것이 없다. 소녀는 칼을 들어 제 심장에 꽂았다. 우선 가슴에서부터 피가 터져 흘렀고, 무언가 지독히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곧 목구멍을 타고 피가 올라왔다. 소녀는 입술을 떼어 제 무릎 위에 피를 뱉었다. 뚝뚝 떨어지는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눈앞이 어질하고 가슴이 너무나도 아파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칼을 꽂았던 손이 벌벌 떨리지만 끝내 칼을 놓지는 않았다. 아파서 정말 죽을 것만 같다. 죽기 위해 찌른 것이 맞지만.

 

달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해나, 고요한 새벽 공기나, 무릎 위로 떨어지는 피 같은 것들이 흐릿하게 느껴진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와 닿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면 파노라마처럼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고 하더니만, 그런 것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흐려진 시야에 붉은 것과 함께 떨어지는 색채 없는 핏방울뿐이었다. 눈물일지도 모르고, 소녀의 머리 위에 자리 잡은 먹구름이 떨구는 비일지도 몰랐다. 어느새?

 

죽어간다. 죽어간다. 곧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든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침대 위 천장을 한 번 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제 심장에 칼이 제대로 꽂혔는지 확인을 한다. 피를 토했으니 두말 할 것도 없이 확실하지만, 두 눈으로 확인을 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가 칼 쥔 손을 노려보았으나 끝내 찌른 곳이 왼쪽 가슴인지, 오른쪽 가슴인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4.

 

시간이 꽤 지나 이제는 한낮이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도 대수실에는 대장의 영압이 없었다. 마타 아시타는 대수실 문을 열어 보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용기까지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사키 하쿠는 눈을 뜨자마자 바빴고, 아침 식사도 거른 채였다. 이 여편네는 도통 집무실에 찾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뺨을 때려 대원들은 대부분 밖을 돌아다니려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정령정이 꽤나 평화로웠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하얀 눈길 위에 미사키 하쿠가 열이 펄펄 나는 발자국을 찍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대장에게 한 소리 해야 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대수실 앞에 섰음에도 안쪽에선 대장의 영압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이 여편네가…….”

 

따위의 말을 하며 미사키는 대수실 문을 열어젖혔다. 사실 문을 손바닥 너비만큼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무언가 불길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려 했다. 이따금씩 대수실은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찰 때가 있었으니까. 3번대 출신 죄수들의 처형식을 거행한 다음날이면 특히 그랬으니까. 그러나 온전히 활짝 열었을 때에 대수실에는 대장이 있었다. 3번대 대장, 미츠이시 뮤지가 있었다. 3번대 대장, 이었던.

 

미사키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썹을 찡그리지도, 눈을 크게 뜨지도 않았다. 숨 쉬는 법도 잊은 듯 했다. 충격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수실 문을 열자마자 느낀 것은 일단 피 냄새였으며,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상한 각도로 고개를 숙인 제 대장이었다. 웬일로 땋은 머리를 한 채로, 피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며, 영압 같은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은 이상한 모습으로 소녀의 시체가 제 부관을 반겼다. 섬뜩하게도, 소녀의 시체는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안녕!

 

미사키 하쿠는 분명히 들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귀 옆에서, 안녕! 하고 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구한 날 농땡이를 피워 꼴 보기가 싫은 대장의 목소리가. 아주 생생해서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그러나 놀라지도 못한 그 찰나의 사이에 두 눈은 대장의 왼쪽 가슴에 박힌 칼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대수실은…… 그래. 죽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미사키는 그 후로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자리를 비운 대장의 대수실에 욕 한 바가지를 쏟아 붓고 가려던 처음 표정 그대로였다.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후에 제일 먼저 한 생각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심장에 칼을 꽂고 죽은 것은 분명하게 미츠이시 뮤지였다. 호정의 3번대 대장, 미츠이시 뮤지. 일단 그는 입을 열어 대장님, 하고 불렀다. 죽은 것이 아닌 것 같다. 살아있는 것 같아. 저런 자세로, 저렇게, 죽었을 리가 없잖아. 그 딱따구리 여편네가.

 

여전히 충격적이지가 않다.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왜 죽어있어? 같은 생각을 하며 미사키가 열어젖힌 방문 앞에서 대장님을 세 번 불렀다. 그 후에 또 대장님, 하고 소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미사키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마타 아시타의 목소리였다. 대수실 문을 열고 서 있는 부대장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보려던 그녀도 똑같이, 제 대장의 시체를 보았다.

 

대장…… 대장님!”

 

마타가 방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으나, 미사키가 막아섰다. 차분히, 차분히……. 마타는 왜 말리느냐고 떼를 쓰다 급기야 칼을 뽑으려 했고, 미사키는 마타의 뒷목을 쳐 그녀를 기절시켰다. 분명히 자살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타살이다. 아마 8할 정도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니, 9할 정도?

 

살해당한 후, 자살로 위장이다. 분명해.’

 

다른 답이 없었다. 대장이 자살을?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 없었다. 그녀는 평소와 너무나도 똑같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인가? 아니. 설마. 말이 안 되잖아. 앞뒤가 맞지 않잖아! 미사키는 소리를 높여 이번에는 대장님, 이 아닌 3석의 이름을 불렀고, 곧 나타난 3석에게 당장 1번대 집무실로 달려갈 것을 명했다. 대수실 침대 위의 풍경을 보여준 후에.

 

5.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3번대 대원 중 절반은 넘는 자들이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 중 8할은 확신하지 못했고, 2할은 자살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심장에 칼을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죽어 있었으니까. 나흘 밤을 지새우며 소녀가 죽은 대수실을 수사했으나 만월이 뜨던 밤 소녀의 대수실에 들어간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또한 칼에 찔린 상처의 깊이가 화야의 길이와 일치했고, 사패장을 입고 머리를 땋아 올린 채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기까지 했다. 눈앞에 보이는 정황은 모두 자살이었으나, 호정의 대부분이 그녀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했다. 충격을 받기보다는 말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 도대체 왜?

 

소녀는 새로운 유서를 쓰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남겨두지도 않았다. 그녀가 연초마다 새로 써 보관하는 유서는 올해 초의 날짜가 기록된 채 서랍 안에 있었고, 꺼낸 흔적도 없어 보였다. 달리 대수실에서 사라진 물건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사 끝에 기술개발국은 그녀의 사인을 자살로 결정지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는 동시에, 미츠이시 준이 정령정에 도착했다.

 

그녀가 죽음을 결심하던 날의 낮에 그녀의 남편은 원정길에 나섰다. 소식이 도착하지까지 사흘이나 걸렸는데, 그가 도착한 것은 단 하루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했느냐고 물어보기에는 그의 얼굴에 흔적이 너무나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시해 해방을 오래 했을 때에 생기는, 시꺼먼 낙인이 이미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스위티!”

 

우선 그는 평소처럼, 애칭으로 제 아내를 불렀다. 그러나 대수실에는 아내가 없었고, 대신 기괴한 옷을 입은 사신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얼굴을 아는 자는 그 중에는 쿠로츠치 마유리, 그의 부대장뿐이었다. 준이 소리를 질렀다.

 

뮤지!”

 

이번에는 온전히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대수실에 아내가 없는 것은 여전했고, 쿠로츠치 마유리는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혀를 쯧, 하고 찼다. 뒤늦게 달려온 마타가 뒤로 넘어지려던 준을 부축했고, 얼마 후 미사키도 현장에 도착했다. 3번대 대장, 미츠이시 뮤지가 생을 마감한 그 현장에. 대수실 대신, 이제는 현장으로 불리는 곳에. 뮤지, 하거나 말도 안 돼, 하는 두 말만 마구 반복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준이 고개를 들어 마타를 붙잡았다.

 

뮤지…… 뮤지는 어디 있어? ? 뮤지 어디 있어.”

 

마타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어요, 이미 죽었어요. 하지만 시체라면 보여드릴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해야 하나? 정말로? 답이 나올 리가 없다.

 

6.

 

장례는 조용했다.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다들 입을 열지 않았다. 죽은 자의 남편이었던 미츠이시 준조차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입을 떼어봤자 나오는 것이라고는 피 섞인 울음뿐일 테지. 그는 소리가 지르고 싶었고, 그녀의 껍데기를 화장시킨 후에는 정말 소리를 지를 예정이었다. 사람 키보다도 높게 쌓아 올린 장작의 가장 위에 작은 관이 하나 놓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관이었으나, 너무나도 볼품이 없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미츠이시 뮤지의 시체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남편이었던 자는, 그렇게 느꼈다. 부대 장례는 성대했으나 조용했다. 총대장 뿐 아니라 시호인 리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무 쌓아올린 것에 불이 붙었다.

 

7.

 

뮤지. 곧 따라갈게. 제발 잠시 멈춰 있어 줘. 혼자 가지 마. 나를 또 이렇게 두고, 먼저 떠나지 마. 나의 스위티, 내가 이제 곧 갈 테니까, 제발 혼자 떠나지 말아줘. 먼저 떠난 너를 또 찾아 헤매야 한다고? 믿을 수가 없어. 너무 이기적이잖아, 예쁜 스위티. 사십구재 같은, 이런 것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영혼의 세계에, 이런 것은 뭐 하러 있는 거야. 하지만 골분조차 남지 않고 연기가 되어 사라진 너의 이름을, 너의 흔적을, 모두 정리한 후에…… 곧 따라갈 거야.

 

제발, 스위티. 기다려줄 수 있지?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잖아. 스위티, 달이 작아지고 있어. 네가 죽던 날은…… 만월이 떴다고 하던데. 나도 그 달을 봤어. 크고 둥그렇고 빛이 나는 그 달을 봤어. 네가 없는 곳에서…….

 

, 왜 이번에도 나를 두고 떠났어? 대답을 들을 거야. 먼저 떠나는 치사한 아내라고 타박할거야. 그러니 제발 멈춰 있어줘. 앞으로 나아가지도, 뒷걸음질을 하지도 말고…… 그 곳에, 서 있어 줘. 시간이 멈춘 듯이, 숨조차 쉴 수 없을 적막 속에서. 내가 널 찾아가면, 기다렸다는 듯 활짝 미소를 지어 줘. 아아…… 제발…….

 

이번에 다시 너를 찾으면, 술래잡기라거나, 숨바꼭질 같은 건 그만 하기로 하자. 이런 놀이는 재미없어. 흥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 네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워. 너를 기억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해. 슬퍼. 서럽고, 눈물이 흘러서 주체할 수 없어. 너의 이름, 너의 흔적, 그것을 마무리한 후에는 내가 너를 찾아갈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이미 널, 한 번 찾아냈는걸. . 달이 뜬다. 일그러진 달이. 커다란 구름에 가려져 빛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우리 다시 만나, 네가 좋아하는 캐롤을 불러줄 거야. 울지 않고 활기찬 목소리로 말이야. 너와 함께.

 

사랑해.

 

8.

 

미츠이시 준이 목숨을 끊었다. 그녀와 같은 칼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아내가 죽은 날로부터 쉰 여드레가 지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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