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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이시 뮤지

[단문] 화야

..,,,..,.,., 2016. 4. 28. 22:18

화야(華夜)

 

   w. 리네 

 

1.

 

미츠이시 대장님, 대영서회랑 내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입니다.”

, 미안!”

 

미츠이시는 주머니를 뒤적여 종이 한 장을 꺼낸 뒤, 먹던 사탕을 뱉어 구겼다. ,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거지? 하는 물음에 담당 사신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대영서회랑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문을 열자마자 책 냄새가 후끈하게 밀려온다.

 

그래서, 어느 자료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미사키 하쿠의 물음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대장이 먼저 일을 하러 가자고 제안을 한 탓에 아직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아 보였다. 미츠이시는 음, 으음, 하며 대답을 미루다 대영서회랑 안쪽의 거대한 모니터를 마주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2, 2년 동안이야. 10번대에서는 스무 명, 7번대에서는 열일곱, 그리고 우리 부대에서도 다섯 명이나 생겼어.”

……탈영병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호정에서 탈영을 하는 사신은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주기가 일정한 것도 아니고, 한 번에 몰아서 사라진 것도 아닌데요.”

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맞는 말이었다. 다른 부대의 대원들이라면 몰라도, 3번대에서 탈영한 다섯 명의 대원은 모두 성실하고 사신으로서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탈영병 중 한 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사키의 직속 보조로 있던 대원이었다. 그에게서 단 한 번도, 사신의 일에 대한 불평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10번대랑 7번대 대원들의 기록을 보려고 왔어.”

그런 건 각 부대의 대장에게 요청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글쎄, 어쩌면 수뇌부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경험에 의한 추측이군요.”

, 그렇지!”

 

아이젠 소스케와 그 반역자 일당을 뜻하는 말이었다. 섣불리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위험해질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10번대나 7번대의 분위기가 반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애초에 호정 13번대에, 반역과 어울리는 부대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숫자가 적은 7번대부터 손을 대 보기로 할까요.”

부탁해줘. 다른 알아볼 자료가 있어서, 너한테 맡길게.”

…….”

 

대장이 가끔씩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잠깐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영서회랑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고, 모니터의 화면을 켜자 그 주위에만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화면에 어려운 글자들이 나열되어가지만, 사신에게는 익숙한 글자들이었다.

 

미츠이시는 잠시 부관의 옆에 서서 모니터를 주시하다가, 이내 홱 돌아 아래층으로 향했다. 아마 그녀가 찾는 기록은 계단을 조금 더 내려가야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돌을 깎아 만든 계단에 신발 소리가 (또각또각) 울려 퍼진다. 올려 땋은 머리가 경쾌하게 흔들리다가, 미츠이시가 여러 책장을 지나친 후에야 흔들림을 멈추었다. 남부 루콘가 50지구부터의 근황이 기록되어 있는, 사전처럼 두꺼운 책 한 권을 빼내어 옆에 놓인 사다리에 걸터앉는다. 겉표지에는 남부 루콘가 기록이라는 제목이 정갈한 붓글씨로 쓰여 있고, 그 아래에 하얀 테이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39810-17. 아마 기록의 순서를 적어 놓은 것이겠지. 이럴 때에는 사탕이 있어야 하는데. 입 안이 허전하다며 투덜대는 것도 잠시, 미츠이시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위층에서는 미사키가 7번대 대원들의 기록을 읽고 있었다. 하나같이 조용하거나 특별한 점이 없는 자들이었고, 그 중 부각되는 한 명이 있다면 영술원을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후 입대하자마자 지하 특별 함리동에 구금되어 10년 동안이나 썩어 있던 자였다. 이름은 호조 유진. 나이는 412, 7번대의 5석 자리에 있는 사내. 입대 후 10년 동안 지하 특별 함리동에 구금되어 있던 그를 꺼내온 것은 전 2번대 대원이었던 7번대 3석의 행보였고, 그 후 3석의 보조로 일하며 석관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참백도의 이름은……

 

……?”

 

2.

 

오늘은 긴급회의야~!”

결국은 제가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군요.”

내키지 않으면 탓쨩을 시킬게. 그렇지만, 요즘 탓쨩 예민하던데~”

……알겠습니다.”

 

그녀의 표정을 본다면 (장난꾸러기처럼 무언가에 가슴 설레어 하는 표정의 의미를 미사키는 알고 있었다.) 심각한 일이기는 했다. 일이 복잡하게 꼬여 귀찮기는 했으나 긴급 참모 회의를 열어야 한다면 오늘이 아니고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사키는 까마귀를 풀어 각 석관에게 긴급 소집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고, 그들이 모두 모이는 데에는 장장 한 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었잖아, 다들.”

죄송합니다. 긴급이 긴급인지라.”

, 괜찮아. 일단 편히 앉아서, 숨 좀 골라 봐.”

 

한 명은 병결, 두 명은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참석하지 않은 참모 회의였다. 그래도 아홉 명이 길게 난 탁상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고, 미츠이시는 칠판에 별 같은 것을 그리다가 바쁘게 달려온 대원들이 숨을 고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으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우리 부대에서 탈영병이 다섯 명이나 생겼어.”

……죄송합니다. 곧 거처를 알아내겠습니다.”

아냐, 아냐. 그런 걸 말하려구 모인 건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진 마.”

그럼……?”

그 탈영한 대원들하고 친했던 사람 손?”

 

두 명이 손을 들었다. 4석 한 명과 5석 한 명이었다.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얼굴에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누구?”

리키야하고 친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야타 리키야 말하는 거지? 직접 보기에 어떻게 느꼈어? 평소 모습.”

뭐 성실하고 일 잘 하고…… 그랬습니다만.”

그랬나?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쯤 되어 미츠이시는 한 번 숨을 골랐다. 긴장한 얼굴이라기보다는, 뭔가 즐거운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보인다. 이런 표정일 때에 3번대 대원들은 긴장하곤 했다. 그들의 말을 빌려 해석하자면 이 표정은, ‘제대로 한 건 터졌을 때의 표정이었다.

 

우리 부대 말고도, 7번대에서 열일곱, 10번대에서 스무 명의 사신이 탈영했어. 최근 2년간 말이야.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춰 지금까지 찾지 못한 두 명의 이름은 호조 유진과 오오쿠로 아야메.”

둘 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 한 명은 5, 다른 한 명은 일반 대원이니까.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구. 모르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소녀는 대장복 옷깃을 한 번 다듬더니 칠판을 향해 뒤로 돌아섰다. 새하얀 분필을 들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 중 하나는 소녀의 참백도 이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모인 참모 모두에게 낯선 단어였다. 삼명. 스며들 삼, 새길 명, 두 글자를 붙여 써 놓고, 크게 동그라미까지 그려 놓은 미츠이시가 다시 뒤로 돌아 참모들을 마주했다.

 

이건 그 아가들 참백도 이름이야.”

?”

 

그 자리에 모인 일곱 명의 석관 모두가 동시에 입을 열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칠판의 왼쪽에 적힌 한자 두 자는 분명히 꽃 화, 밤 야가 맞았다. 3번대 대장 미츠이시 뮤지의 참백도, ‘화야’. 3번대 사신 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화야는 대장님 참백도가 아닙니까.”

맞아! 내 참백도 이름도 화야지.”

같은 이름을 가진 참백도라는 말씀이세요?”

…… 그런 셈이야. 내 참백도 이름도 화야, 그 아가 참백도 이름도 화야. 그런 거야. 하지만 능력은 달라.”

능력이 다르고 이름이 같은 참백도라니……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호정의 군대는 얼추 반만 명이 넘어. 지금까지 천 년의 세월동안의 사신을 모두 계산하면 더 많아지지. 같은 이름의 참백도를 가진 사신의 선례는 몇 번 있었어. 나도 몰랐는데, 대영서회랑 뒤져보니까 나오더라구?”

 

얼굴 가득 흥미로운 표정이 담겨 있다. 미사키는 슬슬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알고 있는 자료라고는 탈영한 사신들의 평소 행적에 대한 것뿐이었고, 그녀가 따로 무엇을 알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두 참백도의 능력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우선이려나? 화야의 능력부터 설명해줄게.”

 

미츠이시는 칠판에 몇 글자를 더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칠판을 한 번 내리친 후에, 뒤돌아 설명을 시작한다. 눈이 반짝이며 빛난다.

 

시해를 해방하면 사방 20간에 특유의 꽃향기가 퍼지게 돼. 그 향을 맡은 상대는 순간 수면 상태에 들어가고, 잠든 상대의 급소를 공격해 죽이는 형식의 능력이지. 귀도계 참백도지만 직접적인 공격력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능력이야. 호조는 이 능력을 처음 해방했을 때 영술원 같은 반 급우 전체를 잠들게 했다는 명목으로 중앙의 눈에 띄어 입대하자마자 10년간 지하 특별 함리동에 구금되어 있었어.”

지하 특별 함리동이라면……

“2번대 대사에 있는, 위험 분자들을 가두어놓는 감옥인 셈이야.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있으려나? 뭐 굳이 신경 쓰진 않아도 돼. 10년쯤 지냈을 때, 2번대에서 7번대로 인사이동 되어 옮겨 간 3…… , 하쿠, 이름이 뭐더라?”

카와카미 히로시입니다.”

그래! 카와카미 히로시에 의해 호조는 7번대에 입대하게 됐어. 일반 대원으로 시작해서 석관의 자리를 차례차례 밟아 올라갔고, 5석이 된 지 3개월 만에 탈영했어. 호조의 시해 능력은 파급력이 크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호조는 검술에 능하지 않아.”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아이처럼 소녀가 즐거운 듯 방실방실 웃었다. 이 묵직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는 이 웃음만큼이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다음은 오오쿠로 아야메의 능력이야. 참백도 이름은 삼명. 벤 상대의 기억과 무의식에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 놓는 능력, 한 마디로, 조종 능력 같은 거야. 대신 이 능력은 시해를 해방한 상태에서만 유지된다고 적혀 있어. 오오쿠로는 순보, 검술, 백타에 능하지 않은 탓에 시해 능력을 전투 시에 잘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야.”

둘 다 심각하게 문제될 것은 없는 편인데요.”

하지만 불완전한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사키의 한 마디에 한동안 말이 없던 3석이 손을 들어 질문을 던졌다.

 

힘을 합친 그들과 우리 대원들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미츠이시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며, 빙고! 하고 외쳤다. 그 후엔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어 펼쳐 보인다.

 

이건 내가 하쿠를 시켜서 조사하게 한 최근 2년간 탈영병의 목록이야. 43. 우리 부대 아가들까지 합해서 말이야. 실종 시각은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호조 유진과 오오쿠로 아야메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정령정 밖의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가 실종되었다는 점이야. 정령정 안쪽에서 일부러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임무를 받고 외출했다가 실종되었어. 그리고 중앙에서는 이 사건 모두를 탈영으로 결론 내렸구.”

처음 탈영한 두 명의 고의적인 납치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지. 하지만 만약 이들이 타의적으로 감금당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어. 여기까지만 조사해봤다면 말이지.”

여기까지만…… 이었다면요?”

 

이제 소녀는 제 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종이를 들어 책상 위로 뿌리면, 각 석관이 종이를 붙들어 하나씩 읽어 보았다. 별다를 내용이랄 것은 없다.

 

하쿠에게는 이 일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남부 루콘가 50지구부터의 최근 기록을 찾아봤어. 아무래도 탈영 후 사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2년 동안이나 버티려면 정령정에서 멀리 떨어지는 편이 좋을 테니까. 하지만 70지구부터는 치안이 안 좋으니까, 최소 50지구에서 최대 60지구를 거점으로 삼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어.”

남부 루콘가를 중점으로 살핀 이유는요?”

? 그런 거 없는데?”

……?”

 

미사키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참모들 모두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멀쩡하게 생기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미츠이시뿐이었다. 가장 먼저 그럼 그렇지, 하고 침착해진 것은 하쿠였고, 끝까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남아 있는 자도 있었다.

 

그냥 감이었는데. 왠지 남부일 것 같아서.”

그래서…… 감이 맞았습니까?”

물론이지!”

 

맞다면 할 말이 없다. 미츠이시는 잠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다가, 도로 일으켜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남부 루콘가 50지구부터의 기록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까? 하고 묻는 대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14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어린아이 세 명이 한 번에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어. 평범한 혼백의 윤회 현상처럼 입고 있는 옷까지 사라졌고, 영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흔적을 찾을 수도 없으니 별 문제 없이 넘어갔던 모양이야. 53지구에서 59지구 사이에서 차례차례 혼백 소실 사건이 발생했어. 정확히 표현하자면 뭔가 이상한 혼백 윤회 사건이랄까. 매월 세 명씩의 어린아이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윤회되어 자취를 감췄어. 자연스러운 윤회 현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

 

참모들이 웅성이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두 명 정도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츠이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미사키에게 정리를 부탁했다. 미사키는 차분히 입을 열어 정리를 시작했다.

 

호조에게는 민첩한 사신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오오쿠로에게는 시해 해방 한정이지만 벤 상대를 자신의 심복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최근 2년 간 제일 먼저 탈영해 자취를 감추었고 아직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후 평소의 행실로 보아 탈영을 할 동기를 찾을 수 없는 많은 사신이 정령정을 떠나 임무를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아 탈영 처리 되었으며, 탈영한 사신이 거점으로 잡기에 좋은 루콘가 50지구에서 60지구 사이에서는 묘한 혼백 윤회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요. 두 사건에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판단됩니다.”

 

멋져, 잘했어! 하며 소녀가 박수를 세 번 친다. 이내 허리를 쭉 펴 통통 두들기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곧 대수회의가 열릴 거야. 아마 쿄라쿠 총대장은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일에 대해 언급할 가능성도 있어. 나는 대수회의가 열리기 전에 일을 벌일 생각이야. 시게루 군, 레이카쨩이랑 함께 신뢰할 수 있는 대원을 다섯 명 정도 모아 남부 56지구로 출동해 줘. 가기 전에 3번대 창고에 들러서 영력을 제어하는 토시 챙겨 가는 것 잊지 말구. 만약 호조와 오오쿠로가 혼백 사냥을 하고 있는 셈이라면, 아마 56지구일 가능성이 제일 크니까, 그 곳에 거점이 있는지 확인해 봐. 은밀기동에는 대수회의에서 언급이 된다면 지령이 떨어지겠지.”

알겠습니다.”

 

두 명이 먼저 일어서 회의실을 나선다. 남은 참모들을 보던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사루 씨. 은밀하게 루콘가 지하 무기 창고에 다녀와 줘. 도둑맞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새 무기의 수령도 직접 해. 그곳의 보초를 강화시켜야겠어.”

 

이쯤 되어 소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다음엔 누구에게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 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모들은 꽤나 숙연하게 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유토 군과 맛쨩은 7번대 대장과 부대장의 행보를 보고해 줘. 대수회의가 끝난 후부터, 내가 그만 해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마찬가지로 10번대에는 요시다 씨와 사이토 군이 가면 되겠지? 잠입을 한다거나 뒤를 밟으라는 게 아니야. 3번대에서 7번대나 10번대로 가야 할 업무 등을 핑계로 각 대사에 자주 들러달라는 거지. 이 일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직접 그만 하라는 명령을 내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구. 명심해. 뒤를 밟는 게 아니라, 자주 동태를 파악하라는 뜻이야. 알았지? 남은 두 명은……

 

눈을 도록도록 굴리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3번대 회의실은 지나치게 밝았다. 수백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랬지만, 미츠이시가 그런 것을 알 리는 없었다.

 

, 두 명은 딱히 할 것 없어. , 해산! 몇 시지?”

 

회의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4석이 전령신기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4, 12.

 

3.

 

대수회의라는 이름을 단 모임이었으나 가장 귀찮아하는 표정은 총대장인 쿄라쿠가 짓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자라키 켄파치와 히라코 신지가 그랬다. 12번대 대장 쿠로츠치 마유리가 보고를 마친 후 한 발짝 뒤로 물러 제 자리에 섰다.

 

“13번대는 보고할 일이 없다고 들었고, 그럼 이상인가?”

 

미츠이시는 굳이 입을 열어 탈영한 사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면 대수회의가 끝난 후, 따로 쿄라쿠를 찾아가 말을 건넬 생각이었다. 그러나 쿄라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미츠이시, 정말 보고는 끝난 것이 맞나?”

 

총대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미츠이시에게로 집중된다. 소녀는 얄밉다는 듯 쿄라쿠를 흘깃 노려보며 입술을 쭉 내밀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 2년 사이 탈영한 사신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보고할까요?”

으음, 그건 회의가 끝난 후 따로 말하기로 하고. 좋아~ 해산!”

 

각 부대의 대장들 중에는 자세한 상황을 듣고 싶어 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고, 미츠이시와 쿄라쿠는 7번대와 10번대 대장의 행보를 유심히 살폈다. 남다른 반응이랄 것은 보이지 않는다. 1번대 회의실에는 이제 쿄라쿠와 미츠이시, 단 둘 뿐이었다.

 

남은 보고를 해 줘야지, 뮤지쨩.”

왜 회의에서 굳이 언급을 한 거예요?”

, 경고 같은 거야. 수뇌부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뮤지쨩이, 그리고 내가 눈치 채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어서 말이지. 안 그런가?”

……나름 나쁘지는 않네요. 어때요, 수뇌부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모든 일은 해결되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니까.”

 

소녀는 쿄라쿠가 무슨 다른 이야기로 먼저 운을 띄워주기를 바랬다. 쿄라쿠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미츠이시에게는 말을 걸지 않고 회의실 뒷문 너머의 이세 나나오를 불렀다.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온다.

 

무슨 일이세요.”

나나오쨩, 집무실로 청주 한 병 가져다주지 않겠어?”

안됩니다. 지금은 업무 시간이니까요.”

에이, 나나오쨩~”

 

이번에는 뮤지가 말을 걸었다. 공석에서는 이세 부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사석에서는 쿄라쿠를 따라 나나오쨩, 하며 부르곤 한다. 마치 축소시켜놓은 제 대장을 보는 것 같아 이세가 이마를 짚다가, ,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한 병뿐입니다.”

, 좋아!”

 

미츠이시가 박수를 쳐댄다. 그러고는 먼저 1번대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우뚝 섰다.

 

하쿠!”

 

뒷문과는 정반대의, 회의실 출입문을 열고 미사키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 얼굴에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이다.

 

오늘은 좀 쉬고 있어. 지금 일에 맛 들렸거든! 돌아가서 서류 할 테니까 너무 많이 남겨 두진 말고 적당히 남겨둬!”

 

기쁘다기보다는, 저렇게 말해놓고 돌아오는 길에 흥이 식어 서류를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든 미사키가 입을 열어 반문하려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뒤돌아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어째 이세 나나오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미츠이시가 제 부대장에게 말을 거는 사이 쿄라쿠는 이미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뮤지가 그 뒤를 따른다.

 

4.

 

오오…… 호조 유진이라면 이름을 들어본 적 있지.”

아는 이름이라구요? 전 몰랐어요. 처음 알았거든요. 제 참백도랑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도.”

뮤지쨩의 참백도와는 다른 능력이지만 말이야. 그래, 같은 이름의 참백도인데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당연히 제 화야죠! 새빨간 꽃이 얼마나 예쁜데요?”

 

말끝에 소녀가 술잔을 들어 들이킨다. 따뜻한 청주가 목을 덥혔다. 술을 넘긴 미츠이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호조의 화야와 오오쿠로의 삼명이 있으면 괜찮은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호조의 화야로 잠재운 뒤 검술에 능력이 부족한 오오쿠로가 삼명을 해방해 상대를 쉽게 벨 수 있죠. 결과적으로 심복을 만들기가 훨씬 쉬워져요. 2년 동안의 탈영병 중 정령정 외부에서 실종된 사신들 모두가 호조와 오오쿠로의 손에 있다면, 어쩌면 아직 모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그렇지. 하지만 오오쿠로 아야메의 삼명은 시해 해방 상태를 유지해야만 그 능력이 발현된다고 들었는데, 영력 소모가 엄청난 그 일을 장장 2년 동안이나 유지하고 있으려면 모종의 영자 공급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루콘가 주민의 소실 사건을 알아보고 왔어요. 대영서회랑에 가서요. 남부 53지구부터 59지구 사이에서, 최근 14개월 간, 매월 세 명의 어린아이가 동시에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어요. 탈영한 사신들이 거점으로 잡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50지구에서 60지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선으로 조사한 거예요.”

다른 방위의 루콘가는?”

나중에 슬쩍 훑어봤지만, 특별한 점은 없었어요. 이 소실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혼백이 평범한 윤회 현상처럼 옷가지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점이고, 또 매월 세 명씩의 어린아이가 목표물이라는 점이에요. 모두 영력이 없는 아이들이죠.”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믿어도 되겠죠?”

 

술잔에 술을 따르던 쿄라쿠의 손이 그대로 멈추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술병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술이 술잔에 담긴 술의 표면에 파동을 일으켰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

어라, 아닌 거예요?”

아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신기해서 그렇지.”

 

아직 백 년도 채 살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태어났다면 모를까, 현세에서 죽어 흘러들어온 그녀는 사신이 된 지 이제 겨우 반백년이 넘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초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자이다. 그리 특출하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만 그것보다는, 눈치가 빠른 것이 장점일 성 싶었다. 그리고,

 

제가 주기적인 영력 소모로 인해 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봤어요.”

 

이런 것. 소녀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가 내릴 판단을 유추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반역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후 결론을 내린다거나,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가진 사람의 아픔에 동감하거나 하는 것들. 역지사지의 능력이 뛰어난 소녀는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때가 많았다.

 

루콘가의 주민들 대부분은 영력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지만, 그들 모두가 영자로 구성되어 있죠. 그리고 혼백을 이루는 영자의 결합과 분해는 윤회를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구요. 사신에게는 영자를 분해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영력이 없는 루콘가 아이들을 납치해봤자 영자 흡수를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생기는 초인적인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실제 사례도 꽤 있었어요. 영력이 없던 평범한 여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영압을 분출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사례 말이에요. ‘초인적인 힘으로 불리는, 위기 순간에서의 자기보호를 위한 영압이라면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압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말이지.”

빙고! 영자를 분해하는 능력은 몰라도, 영압을 흡수하는 능력은 선례가 꽤나 많았으니까요.”

 

쿄라쿠는 즐거운 듯이 낮게 웃음을 흘리다가, 술을 마저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서, 탈영병 중 영압을 흡수하는 참백도를 가진 사신이 있었나?”

그게 말이에요, 없더라구요.”

흐음…… 그런가.”

별로 놀라진 않으시네요?”

하하, 뮤지쨩도 그렇잖아.”

 

뭐어, 그렇죠, 하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쿄라쿠가 술잔에 술을 더 따라 주었지만, 이번에는 술잔을 비우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기술개발국에 가서 물어보거나, 감리관께 가서 여쭤볼 생각이에요.”

감리관께 직접?”

그분은 절 예뻐하시거든요.”

자신하는 건가? 대단한데.”

뭘요. 직접 말씀하셨으니까, 그보다 더한 증거는 없어요.”

그럼 내가 깊게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건가?”

설마요! 총대장이시잖아요? 아직 그들의 목적도, 탈영한 사신들 전원이 살아있는지에 대해서도 몰라요. 물론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긴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 하다가 이내 방긋 웃었다. 화야라는 참백도를 가진 사신이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거든요!

 

호조 유진을 만나고 싶을 뿐 이구만…….”

들켰네요, 헤헤.”

 

소녀는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비우지 않은 술잔을 가만 내려보다가, 이제 가보겠다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쿄라쿠는 일어서지 않고 술병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곁들여 다시 술 한 잔을 넘긴다. 슬쩍 저녁이 오고 있었다.

 

5.

 

상쾌한 날씨이다. 막 해가 저물어가지만 아직은 밝은 편에 속했다. 3번대 대기소로 돌아오면서 블랑카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조만간 출장을 나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귀띔도 해 주었다. 집무실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책상에 서류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왼쪽에 놓인 서류는 아직 처리하지 않은 서류였고, 오른쪽에 놓인 서류는 이미 직인이 찍혀 있는 것들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잠시 천장을 올려다본다. 서랍을 열어 딸기 사탕을 꺼내어, 껍질을 깠다. 입에 넣으면 상쾌한 맛이 혀를 자극한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 사탕 하나를 다 먹고 난 후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겠지서류는 대략 백 장 정도 되어 보인다. 제일 위에 놓여 있는 것은 4월 장기 호로토벌 보고서였고, 그 다음은 수련회 교육대장의 보고서였다.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는 문장이 묵직한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예산 배분을 다시 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조와 오오쿠로의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수뇌부와 정말 관련되어 있을까? 쿄라쿠 총대장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순전히 이긴 하다만. 남부 루콘가 56지구라…… 만약 수뇌부가 관련되어 있다면 오늘 밤, 직접 움직이지는 않아도 적어도 수상한 동태를 보이기는 하겠지. 허나 방금 마주하고 온 감리관의 말처럼 그 군대가 생각보다 쓸모없는 피라미 정도라고 하면? 그깟 마흔 조금 넘는 병력 따위 발각되어 죽게 되더라도 주모자 입장에서는 별다를 손실이 아닌 상황일지도 몰랐다. 감리관은 늘 넓고 다양한 명제를 제시했다.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를 만나고 오면 생각이 더욱 복잡해졌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범위의 상황까지 제시해 보고,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후, 가장 확실한 것을 골라내게 하는 것. 감리관은 늘 그렇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뇌부가 관련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감일 뿐이다. 만약 수뇌부가 연관되어 있다면, 발각될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대영서회랑의 기록을 조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들키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에 기반을 둔 행동인가? 혹은 다른 무언가를 꾸미고 있기 때문? 어쩌면 누군가 눈치 채서 이 일에 대해 조사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의 경우에는 확률이 너무 낮았다. 쿄라쿠 총대장이 사려 깊고 눈치가 빠르며 선대 총대장보다 행동력과 중앙에 대한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을 호정의 대장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수뇌부와는 관련 없는, 호조와 오오쿠로의 단독 행동이라고 판단한 후 처음부터 일을 다시 짚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묘한 혼백 윤회 사건과 2년 동안의 탈영한 사신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으로 답을 내리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남부 56지구를 정찰하러 간 대원들에게서 소식이 전해져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셈이다. 어느새 사탕은 녹아 사라졌고, 서류는 서른 장 정도가 남아 있었다. 일단 저녁을 먹은 후 계속해야겠다. 서류를 끝낸 후에는 준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번 사건에 대한 토론을 해봐도 좋겠지. 7번대 및 10번대 대장과 부대장의 감찰 업무를 맡겼던 이들에게는 명령을 철회해야 한다. 감리관의 한 번 알아볼 테니, 다른 일을 조사하고 있거라.’ 라는 말을 듣고 왔으니.

 

6.

 

시호인 리호에게서 도착한 정보를 뜯기 전에 미츠이시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 절단면을 뜯어낸 후에는 후, 하고 내뱉는다. 감리관이 알아본 정보라면, 9할 정도는 확신할 수 있는 정보인 셈이었다. 종이를 꺼내어 펼치기 전에도 또 한 번 숨을 들이쉬었고, 펼친 후에 후, 하고 숨을 내뱉는다. 종이에는 그동안 알아낸 정보가 자세하고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먼저, 수뇌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정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다행이다. 미츠이시가 생각한 가장 최악의 전개는 역시…… (아이젠 소스케의 일을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감는다. 다시 떴을 때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차분히 다음 줄을 읽어 보면, 혼백의 위기 순간에 자기보호를 위해 방출되는 영압을 흡수하는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가 적혀 있었다. 타인의 영압을 흡수해 살아가는 소수종족, 영압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진 참백도, 그리고 금술을 곁들여 후술영창을 할 시에 타인의 영압을 빼앗아 자신의 동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귀도. 두 번째의 경우에는 이미 확인된 사실이니 제외할 수 있었고, 가능성은 첫 번째와 마지막뿐이었다.

 

타인의 영압을 흡수해 사용하는 소수종족이라…… 미츠이시는 잠시 어울리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다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생각 정리가 힘들 때에는 단 것을 먹는 것이 좋다. 추신에 적힌, ‘그들은 몰살당했으나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소문이 루콘가에 퍼져 있다.’ 라는 문장도 읽어보았다. 만약 이들 중 정말 살아남은 자가 있어, 그가 호조와 오오쿠로의 손에 넘어가 있다면 이 자를 통해 영압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만약 그가…… 호조와 오오쿠로의 능력에 의해 오오쿠로 아야메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면.

 

금술을 곁들여 후술영창을 할 시에 타인의 영압을 빼앗아 동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귀도라.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사실이었다. 귀도중 도서관에 가서 알아봐야 할까? 그러나 금술에 대한 것을 떡하니 적어놓았을 리 만무하다. 탈영병 중 금술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귀도에 뛰어난 자가 있었나? 두 명인가, 있었던 것 같다. 검술 실력이 매우 떨어지지만 귀도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가. 미츠이시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하얀 종이를 꺼내어 볼펜을 들고 정리를 시작했다.

 

……무언가를 마구 적어내리다가, 소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미사키 하쿠가 들어오고 있었다. , 깜짝이야. 숨을 고르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온다.

 

정보가 들어왔어. 일단 수뇌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의견이야.”

확실한 정보입니까?”

, 9할 정도 확실해.”

다른 정보는요?”

영력이 없는 일반 루콘가 주민에게서 영압을 빼내어 자신의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야.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 하나는 참백도, 하나는 귀도를 이용한 방법이야.”

참백도의 경우, 탈영병 중에는 영압을 흡수하는 능력의 참백도를 지닌 자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두 가지로 나뉘어. 확률은 50 50인거지.”

 

미츠이시는 자신이 정리해 놓은 종이를 부관에게 내밀었다. 받아들어 읽는 얼굴이 제법 편안해 보인다.

 

얼굴에 생기가 도네?”

요즘 대장님이 일을 열심히 하신 덕분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 보고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죽치고 집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걸.”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일을 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이 더 좋았다. 정령정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신들에게 장난을 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대장이라는 자리가 이따금씩 귀찮게 느껴지는 소녀에게 이번 일은 설레면서도,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그동안 보고가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직인을 쾅쾅 찍어댔던 서류만 해도 몇 장인가. 최근 3번대 대원들은 뭔가 일이 크게 터질 모양이라며 수군대기까지 했다. 드디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단 수뇌부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한 숨 놓을 수 있겠어. 영압을 흡수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지. 아침에는 시게루 군이 와서 그들이 56지구와 57지구 경계의 산 속에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하고 갔어. 마침 내일이 대수회의 날이니까, 내일 회의에서는 이 일에 대해 우리가 알아낸 모든 정보를 보고할 거야. 장소와 두 사건의 관계성을 알아냈으니 은밀기동을 풀어 포박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 그들이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글쎄. 호정에 근무한 지 오래 지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신으로 살면서 모든 정보가 확실해진 후에야 반란이나 폭동을 제압하러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거로 기억해. 전력을 파악할 수 없다면 소수 정예의 선발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지. 혼백부대 선발대 말이야.”

자칫하면 선발대 모두가 몰살당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3번대에서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필요하다면 말이지. 그 아가들의 목적도, 전력도 몰라. 목적을 안다면 폭동이 일어날 기간을 예측할 수 있지만, 목적도 전력도 모르는 상황이니 지금 당장 쳐들어온다고 해도 할 말이 없잖아? 이럴 땐 선공이야. 먼저 들어가서 간을 본 후, 전력이 예상 외로 높다 싶으면 잠복해 있던 본군을 후퇴하고 공격을 미뤄야지. 그래도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위기의식을 심어주기엔 적합할거야. 고작 마흔 조금 넘는 병력이고, 수뇌부나 뒤를 봐 주는 사람도 없어. 목적을 모르면 체포해서 물어보면 되는 일이고, 체포가 불가능하면 뭐…… 죽이면 되겠지?”

저번에도 그렇게 일을 처리하셨다가 쿠로츠치 대장께 한 소리 들으셨잖습니까.”

…… ,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이번 경우엔 단지 탈영한 일개 사신일 뿐이야. 쿠로츠치 선배도 크게 화를 내지는 않을걸.”

 

소녀는 기지개를 편 후, 정보가 적혀 있던 종이를 모아 차곡차곡 접었다. 서랍에도 두지 않고 품 안에 숨기는 모양이 이번 일에 꽤나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일어나 창가에 서서는 바깥 공기를 들이쉬다가, 창밖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대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미사키는 새로 들어온 서류 작업을 위해 제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 대수회의에서 탈영병 포박 건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며칠 동안은 바쁠 성 싶었다. 사월이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7.

 

잡혀 온 죄수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입 대원의 물음이었다. 3번대 5석 후지타 마츠루는 한동안 입을 닫고 있다가 (사실대로 말해 주어야할까, 에 대한 고민을 잠시 했다.) 사실을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공개 처형을 당할 거야. 3번대 대원들은 말이야.”

처형이라면 죽인다는 말씀이세요?”

 

눈이 휘둥그레 해진 신입 대원에게 더는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왕 말을 꺼낸 것 모두 말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후지타는 말을 이었다.

 

대장에게는 본인만의 처형 방식이 있어. 반란이나 폭동 가담자 중 3번대 대원에 한해서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라 없앤 후 목에 석 삼 자의 자문을 새기지. 그런 후에는 참백도를 압수하고 대장 직속 잔업 처리반으로 임명해 대장의 아래에서 잔업을 처리하게 해. 3번대 서열 상 꼴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팔다리가 하나밖에 없는데 잔업 처리반이 가능한 겁니까?”

처형한 죄수들을 기술개발국에 보내서, 의족을 달아주게 하거든. 다른 능력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의족만 말이야. 팔은 없어. 한 쪽 뿐이야. 그 한 쪽 남은 팔로 잔업을 처리하면서, 3번대의 충실한 개가 되어 평생을 일하는 거다.”

으윽…….”

끔찍하게 들리지? 그래. 끔찍한 일이야. 우리 부대의 특성 상 웬만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그녀만의 처형 방법이지. 평생 팔 한 쪽 없이 3번대의 개가 되어 모두에게 멸시받으며 살아간다니, 쪽팔리고 수치스러운 일생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사형보다 더한 고통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제가 들어보니 단순히 조종당했을 뿐이라고 했어요. 잘못이 없잖아요…….”

 

이 어린 대원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후지타에게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뒤에서 미사키가 말을 이었다.

 

정령정을 지키는 군대, 호정의 이름을 달고 반란 및 폭동 미수라는 죄목을 지녔으니 그것은 정령정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됩니다. 중앙 46실의 판결은 최소 사형이겠죠.”

부대장님.”

 

후지타가 먼저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고, 신입 대원도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놀란 듯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미사키 부대장님!

 

, 좋은 아침입니다. 곧 훈련 시간이니 서둘러주세요. 입대하자마자 훈련에 지각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죠?”

 

미사키의 말에 신입 대원이 황급히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늘의 훈련 끝에는 3번대 대원 전원이 소집되어 공개 처형의 장면을 목격하게 될 터였다. 조금은 놀라겠지만, 3번대에서 계속 지내다보면 곧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부대를 옮기면 될 일이었다. 전투는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며 싸움은 어둡고 음산한 것이어야만 하고, 죽음보다 두려운 것을 수치로 여기는 곳. 그곳이 3번대였다. 미사키는 3번대의 대원으로 있으면서, 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부대를 옮기는 사신을 수도 없이 봐 왔다. 저 신입 대원은 과연 어떨까. 적응할 수 있을까? 3번대의 군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체포되어 온 다섯 명의 죄수는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이었다. 살아남지 못한 자, 패배한 자. 곧 대장에 의해 팔다리를 잘리고 3번대의 충실한 개가 되어 평생을 살아갈 자. 동정은 하지 않는다.

 

8.

 

처형식이 끝나면 미츠이시는 오랜만에 느긋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최근에는 주말에 현세로 나가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로 인한 피곤보다는 일에 대한 귀찮음이 슬슬 밀려오고 있었다. 마침 바쁜 시기가 지나가기도 했으니 하루 쯤 즐겁게 술 마시고 노는 것은 상관없겠지. 5월 초의 날씨는 쌀쌀하지 않아서, 이제는 덥다고 생각되기까지 했다. 감옥에 한 번 가 볼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내 마음을 접는다. 대신 호조 유진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는 포박되어 끌려온 후 사흘 동안이나 미츠이시와 대화하기를 거부했었다.

 

너무하네.”

 

입을 삐죽 내밀고 하는 말이다. 같은 이름의 참백도를 가진 자에 대한 흥미가 샘솟았는데, 정작 그 참백도의 주인은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니. 조금 서운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처형이 진행되기 전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하 특별 함리동에서는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물며 반란을 꾀한 저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라도 듣고 싶었다.

 

맛있는 거라도 가져다 줘야하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복도 끝을 돌아서면 멀리 마타 아시타가 보인다. 소녀는 입을 크게 불러 소리 지르듯 그녀를 불러 세웠다.

 

탓쨩~”

, 대장님.”

우리 7번대 감옥에나 갈까?”

또 호조라는 자를 만나러 가는 거예요?”

! 갔다가 1번대 대사에 들러서 쥰쨩도 보고, 돌아와서 점심 먹고 처형장에 가자. 좋지?”

 

마타의 손목을 붙잡고 소녀가 캐롤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왠지 오늘은 무언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침에 단번에 일어났기 때문일까? 아침 식사에 좋아하는 새우가 나왔기 때문일까? 새빨간 코의 사슴은, 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소녀가 지나는 골목마다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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